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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의 연속인데도 행복한 사진생활?

by 선배/마루토스 2012.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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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가족 취미 아빠 사진사라고 자신을 규정짓고 정체성을 확립한 제게도

많은 유혹과 욕심은 있습니다. 없을 수가 없죠..저도 사람인데.

 

단순히 무슨 예쁜 모델이라던가 끝내주게 멋진 풍경을 못찍는거? 그런것도 있지만 지금은 그걸 말하는게 아닙니다.

어제 글(휴가 관련)을 쓰고 나서 문득 든 생각인데 저의 사진생활은 끝없는 포기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를 들어보자면...이번 휴가때부터 당장 그렇습니다.

숙소 앞이 산책하기 참 좋은 길이었고..오후날씨도 나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생각했죠. "아...해가 살짝 질 무렵에 역광 내지는 역사광에 아들이랑 딸이랑 놓고 사진찍으면 배경도 멋지고 예쁘게 나오겠구나."

날씨를 검색해보니 다음날부터는 구름끼고 비가 온다고 나오더라구요. 지금 아니면 머리속에 그린 그런 멋진 아이들 사진을 못찍을거 같았어요.

 

하지만 포기하고 찍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이들과 워터파크에서 놀아주었습니다. 

그리곤 돌아와 창밖의 멋진 노을을 보며 군침을 삼키긴 했지만 노느라 피곤했던 애들 밥을 먹여주고 재웠죠.

 

워터파크에 가지 않고...혹은 아이들 밥을 좀 늦게 먹이고 했더라면 저는 아마 아이들을 데리고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겁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워터파크에서 신나게 놀아주는걸 택했죠. 멋진 사진따위보단 아이들의 즐거움이 우선이니까요.

 

그 다음날엔 용평리조트내 여름한철 생긴 작은 유원지같은곳엘 데려갔습니다.

꼬마기차도 타고 리틀번지점프도 하고 물풍선도 타고....신나게 놀았죠.

 

 

원래 비온다고 했던 날씨였는데 일기예보가 틀리고 날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 생각했죠.

"이 푸른 초원에서 해가 낮게 깔릴 무렵 아들이 저 말들을 타는 모습을 사진찍으면 얼마나 멋지게 나올까!?"

 

하지만 기대도 잠시, 아이는 오다가 중간에 보았던 키즈카페 -_-;; 를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실내 키즈카페 들어갔다가는 제가 원하는 사진은 물거품이 되어버릴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도 깨끗하게 포기하고 데려갔습니다.

 

 

그 다음날엔 또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나오더군요.

"이 푸른 하늘아래서 아이들 사진을 찍으면 얼마나 예쁘게 나올까?" 하는 기대도 잠시.

얼른 짐챙기고 동해로 떠났습니다. ㅠㅠ

아이들에게 바다라는걸 보여주는게 숙소앞에서 사진찍는것보단 훨씬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저런 푸른 하늘은 휴가기간동안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ㅠㅠ)

 

아빠사진사로서 사진생활 한다는게 이렇게 포기의 연속인것 같습니다.

멋진 풍경을 찍을 수 있는거 뻔히 알면서도 카메라 집어넣고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며

빛이 가장 멋진 시간이 다가올걸 뻔히 알면서도 아이들 컨디션챙기다 얼른 돌아가야 할 때도 많고

아이가 정말 신이 나서 놀때일수록 사진기 내려놓고 더 신나게 놀아주는게 사진보다 더 중요하죠.

 

그런데 참 신기하죠?

포기의 연속인데, 행복하기 짝이 없으니 말입니다. ㅎㅎ

 

주말에 아이 집에 놔두고 혼자 늘씬쭉빵 모델사진 찍으러 다니는것보다

늘씬쭉빵 모델사진 포기하고 집에서 아이와 놀아주는게 더 행복하고

 

정말 멋진 노을사진 찍으러 혼자 남한산성 가는것보다

놀이터에 쪼그려 앉아 아이 미끄럼틀 타는거 지켜보는게 더 행복하더라구요.

(그런건 아이랑 같이 가면 되지않냐 하시겠지만 천만의 말씀. 남한산성같은 곳은 모기가 엄청많기땜에 아이 데리고 가면 안됩니다)

 

아마추어 사진사를 자처하는데

사진을 찍을 수 없음에도 행복하다는 이 모순된 현실이....저만의 일은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ㅎㅎ

 

부디 지나친 욕심, 멋진 작품에 대한 집착, 허영에서 비롯된 인터넷 사진게시판 일면같은거에 너무 연연해하지 마시고

아마추어 사진사이기에 비로서 맛볼수 있는

사진을 포기하는 행복을...여러분들도 꼭, 맛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의 웃음을 위해서라면...멋진 사진 그까이꺼, 얼마든지 포기하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