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MERA

핀 맞추던 노인 (캐논 버젼 패러디)

by 선배/마루토스 2006. 11. 21.
728x90
벌써 2년여 전이다. 내가 갓 카메라 산지 얼마 안 돼서 출사를 나갈 때다. 출사 가는 길에,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 학동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학동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핀을 맞추던 노인이 있었다. 마침 가지고 있던 5D와 아빠백통의 핀을 맞춰가려고 핀맞춰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핀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캐코 학동 센터 가서 맞추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맞춰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맞추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맞추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핀테스트용지만 수백컷을 찍고,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칼핀인데, 자꾸만 더 맞추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출사 나가야 할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맞추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쓸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맞춘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맞추우. 난 안 맞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출사 나가긴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맞춰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핀을 맞추려면 제대로 맞춰야지, 맞추다 말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맞추던 백통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백통이랑 바디랑 맞춰서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바디와 백통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학동 캐논 본사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출사 다녀 와서 카메라를 내놨더니 아내는 칼핀이라고 야단이다. 쓰던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핀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핀에는 가로 핀과 세로 핀이 있는데 가로 핀을 맞추면 세로가 맞지 않기 쉽고 세로를 맞추면 가로가 어긋나기 쉽단다. 게다가 중앙측거점에만 맞추다간 주변부가 나가기 쉽고, 바디와 렌즈가 이렇게 딱 맞아 칼핀 나기는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필카는 혹 핀이 안맞으면 스플릿 스크린으로 맞추기도 하고 하지만 어지간 해서는 좀체로 핀이 어긋나는 일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요새 디카는 핀이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

렌즈만 해도 그러하다. 옛날에는 짜이스를 사면 얼마, 라이카를 사면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플라나니 엘마리트니 한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플라나는 비구면 수차와 비점수차를 양호하게 보정할 수 있는 설계로 만들어진 망원계열의 렌즈로 렌즈의 제수차의 증대가 문제시되는 대구경렌즈에서 그 빛을 발하곤 했다. 눈으로 보아서는 플라나니 호로곤이니 하는것을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브랜드를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광각억제를 하고 왜곡수차를 줄이겠는가.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예술과도 같은 바디와 렌즈들을 만들어 냈다.

이 카메라의 핀도 그런 심정에서 맞췄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칼핀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캐논 본사 빌딩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광고판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핀을 맞추다 유연히 광고판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바디를 뜯어 스플릿 스크린을 달고 있었다. 전에 니콘 바디 쓸때 그 스크린 보며 MF로 사진찍던 생각이 난다. MF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MF쓰는 사람을 만나보기도 힘들다.  문득 2년 전 핀 맞추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수필가 윤오영 선생님의 방망이 깍던 노인을 패러디 해봤음. 행여 퍼가실땐 출처와 저자 명기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