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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살았던 그동네를 사진에 담지 않은 이유

by 선배/마루토스 2013.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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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너무나 치여서(최근 계속 야근중...)

아주 잠시 도피성으로 끄적여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세운상가 근처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초4때 정도에 서초동으로 이사가서 또 한 10여년 살다 분당으로 갔는데


사진이란 취미를 가지게 된 다음에

어릴적의 그때 그 기억을 재확인하러 일부러 카메라를 들고

세운상가 옆 인현동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어릴적 기억속에는 그곳엔 참 여러가지가 있었죠.

당장 마굴 세운상가(......)부터 시작해서 인현시장이 있었고

그때 다녔던 영희국민학교와...소풍때마다 갔던 창경원과

자주 갔던 구멍가게와....어릴땐 참 신기했던 오토바이거리...등등...

그런것들을 카메라로 담아봐야지...하는 누구나 할법한 가벼운 동기를 지니고 갔던거죠.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다시 찾았던 인현동 제가 살았던 곳은

기억속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져있었습니다.


살았던 집은 인쇄소로 바뀌어있었고 시장은 퀘퀘한 냄새만 가득했으며

세운상가도 진양상가도 그 위에 있던 아파트도 완전히 바뀌어 아파트엔 더이상 사람도 별로 안살고 있더군요.

미궁같은 구조인 거기서 술레잡기하면 정말 흥미진진했었는데(......)


그때 그 구멍가게도 없었고 심지어는 모교도 없어져있었어요.

사방치기 하며 놀았던 골목, 술래잡기 했던 언덕, 달고나와 뽁이 아저씨가 있던 전봇대...

모두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마음을 굳히곤 손에 들었던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고

도망치듯 그 동네를 빠져나왔어요.


더이상 머물며 그 풍경을 보다가는, 그리고 바뀐 그 풍경을 카메라로 담았다가는

그나마 가늘게 이어져왔던 어릴적의 그 기억들이 덧칠되고 새것으로 바뀌면서 변해버리겠단 생각에..

애써 방금 본 것들을 잊으려 노력하며 그자리를 떠나 그후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사진은 기록이며

또 어떤 분들은 기록으로서의 사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변해가는 것들과

변해가는 모습들을 계속 담으시지만


그날은 기록보다 더 소중한 어릴적의 그 무엇을 뇌리에 간직하기 위해

사진이라는 취미를 하면서도 사진을 애써 부정했던 날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아직 제 뇌리속에는 떡볶이 국물 더 주시던 을지시장의 아주머니의 모습이,

같이 사방치기하며 웃던 구멍가게 아줌마 아들 얼굴이,

신기하기만 했던 세운상가의 부품가게 모습이 희미하지만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네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청계천골목과 세운상가는 제 어린날 기억속에 항상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건만

이제는 다시갔다가는 그 기억들조차 다 지워질 판국입니다.

 

원하건 원치 않건 세상은, 그리고 사람은 변해갑니다.


가끔은...변하기 전의 그모습이 기억속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굳이 새 기억으로, 새 사진으로 그것을 덮어쓰기 하지 않는게 오히려 더 좋지 않는가....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진의 기록성은 너무나도 리얼하고 무섭기때문에

한번 담으면 머리속의 기억이 너무도 간단히 소거될것같아 겁이 났던....그 기억이 나네요...

 

 

그날 그곳에 카메라를 들고 갔다가 도망치듯 나왔던 그 기억은

지금도 종종 불현듯 제 뇌리에 되살아나며 저로 하여금 어떤 중요한 부분을 일깨워주곤 합니다.

 

 

세상엔 사진으로 담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종종 있다는...바로 그 한가지를요...

 

 

 


아 도피성 땜빵성 뻘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