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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아이패드 깎던 노인

by 선배/마루토스 201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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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년 전이다. 내가 세간난 지 얼마 안 돼서 미국에 내려가 살 때다. 중부 왔다 가는 길에 LA로 가기 위해 쿠퍼티노에서 일단 전차(電車)를 내려야 했다.
쿠퍼티노 시내 맞은쪽 길 가에 앉아서 패드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타블렛을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패드 하나 가지고 값을 깎으려오? 비싸거든 다른 데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깎지도 못하고 하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쥐고 있던 패드를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차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차 시간이 없다니까……."

노인은 "그람 구글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諦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OS를 업글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깎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패드가 폰이 될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패드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패드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本位)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不親切)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터틀넥과 청바지를 털며 쿠퍼티노의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야윈 몸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집에 와서 패드를 내놨더니, 자식놈이 예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4세대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자식놈의 설명을 들어 보면,
베젤이 너무 크면 터치를 할때 오타가 나기 쉽고, 한손으로 쥐기에도 힘이 들며,
그렇다고 또 전체 크기가 너무 작으면 가독성이 떨어져 읽어먹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고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무게는 1/3이 줄고 속도는 오히려 2배 빨라졌으니 신기에 가깝다는것이 아들놈의 설명이었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아범시절의 씽크패드는,
스펙에는 적지 않았지만 사운드쪽 배선에 남몰래 금을 써서 전도율을 높이기도 했고
또 SI워크스테이션은 중앙연산장치부터 시작해 3버튼 마우스에 이르기까지 거의 일체형으로 내놓으면서
OS로는 아이릭스를 써 에러가 적었고 몇날며칠 밤을 세우며 렌더링을 걸어도 끄떡이 없었다.
그러나 요사이 나오는 울트라북이니 완제품컴이니 하는 것들은 가격도 싸지 않으면서 오류가 한번 생기면 걷잡을 수가 없다.
OS랑 HW가 딱 맞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것이다.

앱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앱을 처음 살때 얼마, 그보다 나은 것은 얼마, 최고 좋은 것은 또 얼마 하며 값으로 구분했고
모든 기능이 다 들어간 것은 3배 이상 비쌌다. 눈으로 보아서는 이 앱이 좋은지 저 앱이 좋은 알 수가 없다.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처음엔 공짜인것처럼 받게 만들더니 안에는 인앱결제 투성이고, 또한 말만 믿고 인앱결제 다 하는 병신도 없어졌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生計)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공예(工藝)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패드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사과라도 한박스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일부러 쿠퍼티노를 찾아가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다만 사과 한개와 꽃다발들이 그 노인이 있던 자리에 장식되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사과그림이 그려진 건물을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으로 날아갈 듯한 은색 사과그림에 흰구름이 반사되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광채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패드를 깎다가 유연히 그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넥서스를 루팅하고 있었다. 레퍼런스모델인데도 업글이 안된다고 잡아먹을것같은 표정이다.

전에 소니 클리에를 요리조리 뜯어보며 이것저것 깔아보던 생각이 난다. PDA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팜이니 뉴튼이니 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묻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던 쿠리에팀도 분사해 인앱결제 넣고 패드앱과 펜슬 만든지 이미 오래다.

문득 오년 전, 패드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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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필 받아 써보네요.....ㅎㅎ

 

재미로만 봐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