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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 만들어진 사진사의 신화.

by 선배/마루토스 2015.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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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어느날 갑자기, 정말로 갑자기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비비안 마이어. 1926년에 태어나 2009년에 사망한

천재 여류 스트릿 포토그래퍼의 이름은

그녀의 사진보다도 그녀를 다룬 한편의 다큐멘터리와 몇권의 책으로 인해

그녀가 사망한 다음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러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중 그게 누구지?

하는 분들이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브레송이나 카파, 안셀 아담스등의 작가들과는 달리

그녀는 살아생전에 단 한차례도

자신의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었으니 더욱더말이죠.

 

 

2007년 시카고의 한 벼룩시장에서 그녀가 남긴 필름등이 담겨있는 박스를

부동산업자 겸 사진작가인 존 말루프가

저렴하게 구입하면서부터 마이어의 신화는 시작됩니다.

 

 

2008년에 마이어의 다른 필름을 입수한 슬래터리라는 수집가가

 

그녀의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한 적은 있었지만 당시에는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고의적인지 아닌지는 알 방법이 없으나

아무런 혈연도 남기지 못한 마이어가

2009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몇달 후에야

존 말루프는 플리커와 자기 블로그를 통하여 마이어의 사진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꾸밈없고 연출없는 그녀의 작품들은 인터넷상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근 반세기에 걸쳐 쉬지않고 꾸준히...

무려 30만장이라는 놀라운 장수의 사진을

주로 35미리 판형이 아닌 중형카메라를 사용해

디테일까지도 그대로 담아낸 독특한 작풍은

그 자체로서 이미 대가의 경지였다는 평론가들의 평도 이끌어 냈죠.

 

(해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6x6판형의 중형 이안 카메라로 길거리에서

핸드핼드로 남들 몰래 찍는거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브레송조차도 큰거 못쓰고 작은 라이카를 괜히 애용한게 아니거든요.

풍경을 대형판형으로 담던 안셀이랑은 케이스가 다릅니다;;)

 

 

 

또한 존 말루프는 직접 감독을 맡아

그가 보유한 그녀의 사진들로부터 그녀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는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발표하고

이 또한 좋은 반응을 얻습니다.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 될만큼요.

 

세상에. 그 전까지는 무명의 일개 보모에 불과했던 그녀는

이제 브레송이나 카파와 이름을 나란히 하는 일대거장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 것입니다.

 

사진이 발표되고 단 몇년만에말이죠. 비록 죽어서긴 하지만.

 

 

 

저도 그녀에 대한 책들과 여러 사진을 보았으며

그녀의 사진들로부터 여러가지로 느끼는 바, 배운바가 많았습니다.

 

다른거 다 둘째치더라도, 무려 반세기동안

멈추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존경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진사거든요.

거기까지는 저도 동의합니다.

 

 

 

또한 1950년대부터 시카고라는 한 도시의 여러면을

여러각도에서 담아낸 그녀의 사진작품들은

역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예술적으로도 대단히 높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련의 과정에서 위화감을...그리고 작위감을 느낍니다.

 

 

 

존 말루프에 의하면 비비안 마이어는

다른 작가들과는 여러가지로 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그녀는 그녀의 사진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발표하려 들지조차 않았습니다.

또한 발표는 커녕 현상조차 잘 안했어요.(현상 실력도 그리 좋은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만)

그냥 필름인 상태 그대로 보관만 해 놓은 것이 현상한것보다 더 많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말이냐면, 그녀의 사진을 마이어 스스로도 거의 보지 않았다는 소리입니다.

 

최소한 반절 이상의 찍은 사진을요.

현상하지 않으면 볼수가 없으니 보고싶어도 못본것인지,

보려하지 않았는지는 그녀만이 알 일이겠습니다만 여튼 자기도 자기사진을 잘 안봤어요.

 

 

 

두번째로..그녀는 자기 셀카를 굉장히 많이 촬영한 사람입니다.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곳에서.

발표된 사진을 보면 그녀는 타인만큼이나 자신도 많이 담은 특수한 작가입니다.

세상에. 이안중형필카로 셀카라니....

사진찍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보통 특이한게 아닙니다.

 

그러한 그녀가 자신의 사진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과연 바랬을까요?

 

그녀는 자신의 작품들을 발표하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놔둔 것일까요,

아니면 발표는 원했는데 자신이 없었던 걸까요?

발표할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요?

 

 


또한....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말루프가 마이어의 필름을 얻은 것은 2007년입니다.

그리고 그는 2년이란 시간동안 사진을 묵혀두었다가

2009년 4월 마이어가 사망한 다음,

2009년 10월부터 인터넷을 통해 사진을 발표하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사진에 대한 수요가 발생할때마다 그녀의 사진을 퍼블리싱한건 존 말루프 그였으며

그녀의 다큐를 찍고, 책을 발행한 것도 존 말루프, 그였습니다.

 

영화의 2차 시장을 뺀 개봉실적만으로도 2천2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그녀의 사진들을 볼 수 있는 전시회와 출판물등을 통해 보통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익을 올린것도 결국 존 말루프 그입니다.

 

드라마틱하게 포장된 마이어의 고독한 삶과,

마이어가 다른 작가들과 명백하게 달랐던 몇가지 차이점들에 대한 에피소드

(특히 자신의 셀프 포트레잇을 많이 담았다는 것과 사후에 비로서 유명해졌다는 점)는

그녀의 사진을 보고 접하는 이들로 하여금

빈센트 반 고흐와 비비안 마이어를 동일시 해서 보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들의 작품을 팔아서 돈을 번건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공통점은 살짝 가려지지만요.

 

요컨데 비비안 마이어에게는 [천재성]만큼이나 다른 작가에게는 없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것도 고흐 레벨의 작가와 비견될만한.

 

 

 

그녀, 그녀의 작업방식, 그녀의 삶 그 자체가 콘텐츠가 되어 소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본인이 원했건...원하지 않았건 간에 말이죠.

 

 

그녀의 사진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그녀의 먼 친적을 대변한다는 사람이 나타나

존 말루프에게 그녀의 필름 소유권에 대한 소송을 걸었다는 소식은

그래서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닐것입니다.


 

 

비비안 마이어가 널리 알려지게 된 후로

아마추어중 그녀와 같은 스트릿 포토그래퍼가 되겠다는 사람들의 수가

다시금 늘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초상권 침해에 대해서 "비비안 마이어같은 대작가가 나오려면 그정도 침해는 어쩔수 없다"는,

마이어를 제대로 안다면 도저히 못할 말을 서슴치 않고 하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찍는거랑, 퍼블리싱 하는거랑은 다른겁니다.

초상권의 침해는 퍼블리싱 되는 순간 발생하는 것이지 찍는것만으로 침해되는건 또 아니거든요.

 

마이어는 퍼블리싱 하지 않았습니다. 일절. 그 누구의 사진도.

 

 

게다가 그 개념이 없었던 1950년대부터 사진직은 사람의 기준과,

인터넷이 이렇게 활성화된 21세기의 우리 기준이 같을 수는 없는 겁니다. -_-;

 

 

어쨌거나 우리는 지금

특정인에게는 너무나 안성맞춤일만큼

혈연없고 무명이던 한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어떻게 신화적 존재로 탈바꿈되는지를 사실상 리얼타임으로 보고 있는겁니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 대한 평가는 평가고,

그녀의 삶과 작품이 상업적 컨텐츠화되어 세일즈 되는 것은 되는것입니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그녀는

이것이 과연 어떻게 보고있을런지....저는 그게 가장 궁금합니다.

 

 


또한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과 삶에 열광하는 분들에게도

좀 다른 시각에서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야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일개 아마추어 주제에 감히 이런 글을 적어 올려보네요.

 

 


[신화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누가 한 말인지, 참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