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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늘지 않아요. 이제 뭘해야 할까요'에 대한 제 답변

by 선배/마루토스 2015.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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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루토스님

항상 좋은 글과 말씀에 감사하며 잘 배우고 있습니다

다른게 아니라 지금은 기초,기술적인 부분을 어느정도는 이해를 하는 단계에 온거 같아요

이를테면 다른 분들 사진을 보면

'아~, 이렇게 찍었구나, 저렇게 찍었겠구나 이런 피사체는 이런 렌즈로 찍어야 멋진데' 등등

 

그리고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면 어떻게 나올지 대충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피사체를 보면 가리기 시작합니다

뒷배경이 산만해서 예쁘게 안나오는데, 저건 색이 예쁘게 안나와 이러면서...

 

한번 본사진은 따라 찍어 구현할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실력이 빼어난건 아니구요

 

제가 마루토스님께 조언을 구하고 싶은거는요
이쯤 되니 사진이 정작 안늘어요. 뻔합니다

 

사진에 머무르는 시간 시선이동, 이런거는 이해하는데요
점,선,면 이런거야. 사실 제 범주는 아닌거 같구요...

 

뻔한 사진에서 벗어나질 못해요

시간되실 때 늦더라도 소중한 말씀 기다리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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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에게서 이러한 질문을 받고, 답을 해드렸는데


그 답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시는 다른분들께도 도움이 좀 되지 않을까 싶어

 

살을 좀 붙여서 블로그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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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입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어느정도 무엇이든 할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안찍어도 찍은 결과를 예측할 수 있고

셔터를 누른 순간 이미 사진의 완성본이 보이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게 되는 대신 사진이 전반적으로 뻔해지는 단계에 누구나 다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도 거기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레알 그래요.

이름난 거장들도 보시면 브레송이건 카파건 아담스건 카쉬건 할스먼이건 살가도건 최민식이건 김아타건

기교나 표현법은 어느정도 레벨 이상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거의 고정됩니다.


프로가 이럴진데 아마는 오죽하겠습니까. 사실상 벗어날 수 없습니다.

김아타작가 사진 보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초장노출 하나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이 단계에 들어서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 계신 단계는 '어떻게'의 단계예요.
앞으로 다시 돌아가면 거기에 '왜?'가 있습니다.


사진을 왜 찍는지, 찍어서 어디다 쓸건지, 사진으로 무얼 말하고 싶은건지...


여태까지는 표현력이 부족해서 원하는대로 찍지를 못해 원하는대로 찍는다는 그 '수단'을 위해 공부를 하신겁니다.

 

원하는대로 표현하는 수많은 방법을 너무나 열심히 익히다보니
깜빡하고 살았지만 표현력이 어느정도 갖춰진 지금
원점으로 돌아가 비로소 수단이 아니라 '목적'에 집중할 수 있게 된겁니다.

 

이 기초단계에 도달했으면 이제 다른 작가나 다른 아마들이 그랬듯이

자기가 말하고 싶은거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거 그래서 자기가 얻고 싶은걸 추구하시면 됩니다.

 

 

저는 그게 아들 딸 찍어 가족이 하하호호 하는거였던거고

누구는 가난한 이들 찍어 작가연 하는거였던 거고
누구는 여행다니며 본걸 기록하는 거였던 거고...
그런거라고 생각해요.

 

 

다시 거장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거장들도 기초를 쌓은 후부터 작품세계가 시작됩니다.


최민식 선생님의 오래된 한국풍경은 흑백속에 적정노출로 순간을 잡기를 반복하며

세바스티앙 살가두는 일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으며

카쉬는 찍는 대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포즈와 표정과 소품을 정해 찍었죠.

 

기교적으로 보면 이 거장들의 사진도 뻔하다 할 수 있지만
정작 사진은 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교가 아니라 내용이니까요.

기교를 힘들여 익힌것은 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기 위함이었으니까요.

 

다만, 표현력 그 자체는 지속적으로 계속 더 넓혀갈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익히신 기초들의 융합으로 생겨나는 여러 테크닉들은
계속 계속 익혀나가실수록 표현력이 넓어지니까요.

 

미술을 뭘 하건간에 시작은 데생입니다. 그리고 수채화 유화 수묵화...여러가지를 익히다가

한가지에 정착해 그리게 되는데 이경우도 기본을 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말씀하신 그 정해진 어떤 형태에 고착화 됩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둘로 나뉜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형태는 두고 내용으로 승부를 하는 사람들이며

다른 하나는 파격으로 기존의 형태를 깨고 새 형태로 승부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미술 사조라는게 생기는 거고, 인상파니 추상파니 입체파니 초현실파니 하는게 생기죠.

이게 미술에서의 이야기인데, 사진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생깁니다.

 

그게 바로 예전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 다큐멘터리로서의 사진, 미술로서의 사진...그런 구분이고

요즘에 와서는 포토샵이 더해져 디지털아트라는 신장르까지 생긴게 현실입니다.

 

그 두 큰방향중 어느쪽을 하실지는 본인이 선택하시는 거죠.

 

그러나 그러한 기교만이 사진 표현력의 전부는 아닙니다.
내용으로 승부하겠다...그 뒤부터는 인문학적 소양과 교양도 중요해집니다.

 

사진에 꽃 하나를 넣더라도 꽃말이나 꽃이 지닌 색의 의미를 알고 넣고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수많은 시각적 예술들에 대한 오마쥬도 필요하며

 

사진에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소품하나 복장하나까지도 신경쓰는 세심함이 필요해지기도 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배경이나 빛 보고 맞춰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콘티같은걸 짜고 머리속에 그린 그림을 실체로 구현화 해내기 위해 환경까지 만드는 것은 또 별개예요.

이제 그런거에 도전해보실 때가 된겁니다.

 

저도 제 사진이 어느정도 정형화 되어있고 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딱히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작년과 올해 비교해 성장한 아이들의 다른 모습...그 자체가 사진을 다르게 만들어줍니다.

가족사진의 특권이 이런거죠 ㅋ

 

또 가족사진은 일단 실패하지 않는것이 제일조건이며 뻔해서 나쁠것도 없고

가끔 새로운 시도 조금씩 해보면 그걸로 만족이거든요....

 

 

사진이 뻔해졌다고 느끼신다면 일단 기교의 기초는 되신겁니다.
그렇다면 기초들의 융합에서 나오는 더 넓은 표현법들을 익히시면서

이제 사진의 내용과 목적, 무엇을 왜 담을지, 나만의 플러스 알파를 무엇으로 할지를 신경쓰시면 되는거예요.

 

이게 제 대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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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보니 정작 답변보다 살이 꽤 많이 붙긴 했는데...

여튼 뭐 다른 분들께도분명 도움 되리라 믿고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