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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20년, 제 지난 사진생활을 되돌아보며

by 선배/마루토스 2017.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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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마도 1998년 늦은 여름으로 기억합니다.

 

다니던 게임회사 그만두고 대학에 복학했던 그시절, 덕력 넘치는 몇몇 모임에서

저는 '디지털 카메라'라고 하는 것을 처음 보게 됩니다.


아마 소니 F1모델이었던듯....

이전에도 간단히 썰 풀어본 적 있긴 한데

덕질을 위해 필연적으로 동반되던 스캔의 복잡함에 질려있던 제게

사진을 그대로 디지털 이미지로 바꿔주는 그 기계가 가진 잠재력은 매우 인상깊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디지털 카메라는 아직 상당히 조악한 품질에 비싼 가격을 자랑했고

'퀄리티'를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오덕에게 어필하기에는 아직 많이 일렀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99년,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니콘 쿨픽스를 위시하여 다양한 디지털 카메라가 유행처럼 전 세계를 덮친 가운데

공대생들을 비롯한 얼리 아답터들에게 어마어마한 인상을 안겨주는 제품이 나왔으니...

그게 바로 소니 F505라는 지금 생각해도 미친 스펙의 카메라였습니다.

 


저도 물론 그 카메라가 매우 매우 탐났지만, 아직 제게는 일렀죠.

돈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 카메라는 그 당시 백만원도 넘는 미친 카메라였으니까(......)

 


실질적으로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다니기 시작했던게 2001년부터 였습니다.

소니 사이버샷 s75...이 카메라를 선택한 이유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수동기능이 충실하게 제공되었기 때문이었던걸로 기억해요.

저는 감도와 조리개와 셔속의 상관관계를 이 카메라를 통해 완벽하게 배웠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이 카메라는 영원히 내 손을 떠나게 되었고...

아주 자연스럽게 저는 다음 카메라로 F707을 선택하게 됩니다.

 

F707!! 2002년에 이 카메라가 지닌 위상은 지금의 풀프레임DSLR과도 비길정도로 높았어요.

아 물론 그 위에 s1Pro 같은 초창기 DSLR이 존재하긴 했어도 여튼지간에....

 


제가 제 첫번째 문제를 깨달은 것이 이 시기였던걸로 기억합니다.

s75로 찍은 사진과 그보다 훨씬 좋은 카메라인 F707로 찍은 사진은...

그 가격 차이를 생각해볼때 사실상 화소를 제외하고는 그닥 차이가 없었거든요.


어디 그뿐인가요. 쿨갤등에 올라가는 남들의 사진과 비교해도 내 사진은 그다지 변별력이 있지 않았습니다.


이시기의 저는 '무엇을 왜 어떻게'찍어야 하는지 모른채로

단지 '이미지의 디지털라이즈를 간단하게 하고 싶다'라는 덕스러운 욕구에 몸을 맡기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여튼 이때 저는 외장형 플래시를 구매해서 F707에 달고는

순간광의 수동 사용법을 마스터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몸으로 익히던 무식한 나날이었죠. 감도, 조리개, 셔속, 그리고 광량의 상관관계...

순간광의 기본을 저는 이 똑딱이 카메라로 뗀거예요. 디지털이기에 습득도 빨랐고 뭐...


그때까지는 사실 포토샵을 할 줄 알면서도 굳이 보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지만

이 시기부터 약간씩 보정에도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또한 색수차로 유명했던 카메라이기에 이 시기에

자이델의 5수차들에 대한 기본 광학의 이론적 배경등도 익히게 되고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828로 기변했다가...2004년에 우연한 계기로 캐논 350D와 교환하게 됩니다.

 

 

왜 350D였는지도 생생히 기억해요.

당시 후지, 니콘등 다른 DSLR들도 물론 존재했었지만...


감도 100부터 시작하는 보급기는 당시 이 카메라가 유일했습니다.

 

젊으신 분들은 이해가 안될수도 있지만 그당시 기술력으로는

감도 100부터 시작하는 센서조차도 그리 쉽게 만들지 못했던 겁니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저는 350D를 통해 캐논에 입문하게 되었고, 캐논과의 오래고 질긴 인연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

 


지금의 와이프인 당시 여친에게 비밀로 미친척하고 24-70 2.8 L렌즈를 지르는가 하면,

F707때의 경험으로 외장플래시는 꼭 있어야 한다며 메츠 외장 플래시를 들이고...

크롭바디면서도 85.8을 들여 신나게 아웃포커싱에 대한 갈증도 풀고..


지금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니었던것같습다. 대신 재미는 진짜 있었던거같아요.

온갖 새로운 것들을 익히는 재미와 콤팩트 카메라의 태생적 한계로부터 해방된 재미가 진짜.....(....)

 

한편 당시 인터넷 게시판에서 프로들도 못쓰는 장비를

뭣도 모르는 아마추어가 쓰는 꼴이 돼지목에 진주목걸이같다는 비아냥도 꽤 들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었으니까요. 사실 저런 소리는 지금도 듣고 사는거같습니다. ㅎㅎㅎ

 

어쨌거나...실질적으로 사진의 기초는 거의 이때 다 쌓았던것같아요.

그만큼 신나고 재미났던 시절이었고요.

특히 수동이 아닌 E-TTL 플래시 시스템을 마스터하기 위해 들였던 시간과 노력은 지금 생각해도 보람차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최고로 즐겁고 신났던 시절은

2006년 말에 EOS 5D를 들이면서라 할 수 있겠네요.

 

아마추어에게 있어 사진을 즐겁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의 하나가 바로 장비질임을

이때만큼 실감했던 때도 없었던것 같습니다.

 

동시에 바로 이 시기부터 사진과 카메라에 대해

나름 깨달은 바들을 짤막한 글들로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몸으로 부딪히며 익히고 깨달은 바를 다른분들 질문에 답으로 달다가 자꾸 같은 질문이 반복되기에... 

 

게임 그래픽을 하는데 중점을 두었었던 제 포토샵 스킬도

서커스곰님의 책 등을 보며 사진 위주로 가다듬어지기 시작했고...


다른 이의 방식을 익히면 그걸 그대로 하기보다는 아마추어인 제게 가장 맞다 생각되는 방식으로 바꾸고

제 자신에게 가장 효율적이라 생각되는 프로세스를 확립시킨것도 이 시기입니다.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다른 분들과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갑론을박하며 웃고 즐겼던 시절이고요.

 


그리고 사진을 시작한지 몇년만에 처음으로,

제 사진의 목적, 목표가 확고하게 섰던 것도 이 시기입니다.


결혼하고 1년후 2008년에 첫 아들이 태어났고 전 그때 내 뇌리를 강타했던 작은 깨달음을 평생 잊지 못할거예요.


"풍경이나 모델 사진은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많이들 찍지만,

내 아들 딸을 찍어줄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가 아닌가!"

 


한편으로 2008년은 내게 또 다른 전기가 됩니다.

캐논 코리아가 그간의 제 FF저울...아니 온라인 활동을 눈여겨 보고 있다가 (......)

전설의 명기의 후속기인 EOS 5D mk2의 프리뷰를 의뢰해 왔거든요.

 


리뷰해보면서 당시 느낀게 5D mk2의 고감도 저노이즈도 대단했지만,

풀프레임 판형이 만들어내는 동영상의 위력은 실로 경천동지의 수준이었고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일단 저부터 앞장서서(......) 이 카메라를 구입해 쓰게 됩니다.

 

오두막과 10년에 걸친 동거의 시작이었죠.

사실 위에서 언급했던 깨달음의 탓도 있고...

5D mk2를 들이면서부터는 사실상 장비에 대해 그렇게까지 목을 매지 않게 되었습니다.

 

둘째가 태어나고 얼마 후 와이프가 만투를 질러주긴 했지만

그게 지난 8년간 지른 유일한 사진 관련 물품이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일단 캐논 코리아의 신제품 리뷰를 간간히 하는 덕에

새로 나오는 제품들을 꾸준히 경험해볼 수 있었기에 아 이건 나한테 필요하다 아니다를

매우 높은 수준의 변별력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었던 덕도 크죠.

 

물론 5D mk4라는 유혹으로부터는 저도 못벗어났지만 (......)

 


아마도 저는 사진의 수준이나 예술성? 그런걸로 따지면

아마추어중에서도 바닥레벨일것입니다.


애초에 전 작품지향이 아닐 뿐더러 업으로 하지 않으니 그만큼 사진에 절실함도 없어요.

 


혹자는 이러한 제 사진 수준을 가지고 저를 평가하는데,

까놓고 말해 평가의 기준이 잘못된겁니다.

 

제 사진에 작품성이 거의 없다는 것은 팩트이며 저 스스로도 매우 잘 알고 있어요.

심지어 저는 그게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비싸고 좋은 카메라 샀다고 다 작품을 추구하란 법이 대체 어디 있나요?

 

저를 평가하려면 제 사진의 작품성이 아니라 제 사진생활의 행복도를 두고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마추어들 중에서는 꽤나 행복한 사진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해요.

적어도 내 사진을 두고 가타부타하는 이들보다는 훨씬.


당장 저는 멋진 사진 몇장 찍겠다고 가족을 남겨두고 가는 일이 없습니다.

가족과 함께 하며 틈틈히 몇장....그게 제가 정한 제 룰입니다.

제아무리 훌륭하고 멋진 사진을 찍을 찬스가 생겨도 가족들이 싫어한다면 찍지 않습니다.

아마 여기서 결정적으로 차이점이 생기고 있을거예요.

 


여튼 뭐 새로운 장비 나오면 경험해보고,

외국에 새로운 기술 나오면 습득하고,

온/오프라인에서 지인들과 담소하며,

원하는 때에 사랑하는 가족을 찍고 다같이 보는..

그리고 가끔 직접 만들고 조립한 건프라를

그간 쌓은 스킬 총동원해 찍는 제 사진생활에


저 자신은 한점의 불만도 없습니다.

이 이상 뭘 더 바라겠어요.

 

이대로 아이들 클때까지 꾸준히 담으면 저는 그걸로 만족입니다.

아마도 저는 계속... 사진을 찍을 것입니다. 오직 행복을 위해 셔터를 누를 거예요.

 

그리고 꾸준히 입을 나불댈 것입니다.

 


전, 오럴구라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