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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다림과의 싸움이다.

by 선배/마루토스 2010.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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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DSLR같이 큰 카메라 들고 사진에 입문하시는 분들의 경우

가장 많이 하는 질문중 하나는 "사진 출사 갈만한 곳 추천좀..."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변의 멋지고 좋은 소재들은 아직 볼 눈이 없다보니

특출나고 이름난 곳들을 자꾸 찾아가려 하시는 경향이 짙죠.


뭐 그것 자체는 나쁜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열정을 높이 평가해줄만 합니다.

아예 움직이지도 않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데 제가 여기서 지금 말하고자 하는건

나간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아예 출사 코스를 정해서 강행군을 하시는 그런 경우 말이죠.

예를 들면 동대문에서 시작해 청계천을 거슬러 올라가 광화문까지 너털걸음으로 이동하며

온갖 사진을 찍고, 잠시 쉰후 광화문에서 삼청동길을 거쳐 쉴새없이 셔터를 눌러대는 그런식 말입니다.


분명히 그것도 사진의 한 출사형태임에는 분명합니다.


가급적 많은 소재, 다양한 풍경들을 뷰파인더로 보며 담는것..매우 훌륭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이런식의 출사에는 사진에 있어 가장 중요한것중 하나가 결여되어 있기 쉽습니다.


그게 바로 무엇? 기다림입니다.



자기가 맘에 드는 포인트를 찾아 헤매이다 마침내 그 포인트를 찾았다면,

그 포인트에서 기다릴 줄은 모른다는거죠.


무엇을 기다리냐고요?


당연히 최고의 그림이 나오는 한순간, 이른바 결정적 순간을 말입니다.



풍경사진을 예로 든다면...저 위의 사진은 제가 입문자 시절에 찍은 한장입니다만

제가 저 한장 찍는데 어느정도의 시간을 썼다고 생각하시나요?



무려 네다섯시간을 썼습니다.

그것도 어디 가지도 않고 그냥 한 장소에서요.



사진을 찍다보면 날씨와 빛에 대한 직감같은것도 좀 생깁니다.

저날은 바로 그 감이 움직이는 날이었죠.


아직 대낮이었지만 구름의 높이, 시정거리. 미세먼지..전날 왔던 비..구름의 양..그 모든것이 제게

4,5시간 후면 엄청나게 멋진 저녁놀이 반드시 나타날거라는 확신을 주더군요.


그래서 어떻했느냐면, 자전거 타고 나가 해가 질무렵 근처에서 가장 풍경이 멋질만한 곳으로 가

삼각대에 카메라와 렌즈 올려놓고 마냥 기다렸습니다.


하늘빛이 가장 멋지게 붉게 물들 그순간을요. 어디 가지도 않고 쭈욱.


너댓시간 지나 해가 저물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쉴새없이 셔터를 눌렀지만 매직아워는 너무나 짧더군요.


가장 빛이 아름답던 시간은 채 10분도 되지 않았습니다.


다섯시간도 넘게 기다려서 10분도 채 안되는 시간동안 셔터를 누를수 있었고

어찌보면 허탈하기까지 했지만 그 대신 저 한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크롭바디라서 더 넓게 못찍은건 장비의 한계지만 말이죠. -_-;;


유부남이 된 지금은 저리 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해져 버렸지만

그 마인드 자체는 결코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만약 제가 카메라 들고 어디 멋진 풍경 없나 하면서 여기서 한장 찍고, 저기서 한장 찍고 하다 들어왔다면

절대 저 한장은 찍을 수 없었을 겁니다.


굳이 풍경사진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인물사진, 스냅사진..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프로사진사들, 예술사진사들이 입을 모아 하는 것....그게 바로 기다림의 중요성입니다.


어쩌면 다가오지 않을수도 있고

어쩌면 그냥 지나가버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카메라를 든 사람이라면 기다린다는 마인드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최고의 빛, 최고의 한순간이 올것이라 믿으면서 말이죠.




다섯시간동안 돌아다녀도 찍지못한 내 인생의 한장,

다섯시간동안 기다림으로서 얻을 수도 있는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