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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있어 제목의 중요성에 대하여.

by 선배/마루토스 2014.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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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라는 정지된 이미지에는 제목 외의 그 어떠한 추가텍스트도 붙여서는 안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목이라는 것은 별것 아닌듯 보이지만 실은 사진의 촬영목적과 의도를 짧고 굵게 담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텍스트이며

중2병으로 보이기 딱 좋은 멋지기만 한 허세만발하는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보다 더 심한건 아무렇게나 무제 라고 짓는것이죠.


'무제'라는 말은 그 사진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는거나 다름없습니다.

"나 사실 별로 할말도 없는데 그냥 있어보일라고 아무거나 찍은, 낙서같은 사진이야"

농담아니고 무제란 말은 이렇게 해석되게 딱 좋습니다.

아니라고요? 그럼 제목 무제라고 짓지 마세요. 아 물론 한자로 無題 해도 멋없습니다 그거.


그 사람이 말하고 싶어 미칠것 같았던 한 주제를 찾아 담아 낸 후

그에 대해 여태까지 살아오며 갈고닦고쌓아온 인문학적 소양을 쥐어 짜내어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

사진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으로서 붙여도 모자를 판국에


無題?


아유...그런 사진이면 남 보여주지 마세요.


한가지 또 착각하시는 것중 하나는

제목이 없는거랑, 無題랑은 다르다는 겁니다.

無題는 그 자체로 제목이예요 이미. 한자나 영어까지 들고 나오시면 더더욱.

 

사진에 있어 제목이라는건

그렇게 쉽게 붙이거나 해서는 안되는, 사진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담아내고팠던 주제와 그 주제를 표출해내기 위한 소재에 관련하여 허락되는 유일한 힌트인거예요.

 

 

 

 


이론 공부, 미술 공부 좀 해보신 분들이라면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그림, 아시는 분들 계실겁니다.

그리고 [데페이즈망]이라는 용어도 말이죠.

 

미술사에 있어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방점에 해당합니다.

의식, 추상, 용도, 명명, 언어, 실재....이거에 대한 논문만도 셀수없이 많고

이 그림은 그 임팩트와 생각할 거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있습니다.

 

저 평범한 파이프(라고 생각되어지는 그 어떤 물체)를 그린, 평범한 그림이

세기의 명작중 한장으로 남게 한 것이 바로 제목의 위력이예요.

"이미지의 배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이 제목 한마디에는 우리가 얼마나 선입견과 편견에 쩔어있는지, 실제와 허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묵직한 돌직구를 던집니다.


어렵게 보자면 한도 없이 어렵고 쉽게 보자면 한도 없이 쉽지만

제가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드리고 싶은 말은 사실 간단한겁니다.

 

제목이 사진의 해석에 너무 큰 제한을 두어서도 안되지만 사진의 해석을 너무 도와서도 안됩니다.

전하고 싶었던 바는 사진 이라는 이미지의 형태로 전해야 하는 것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방식이예요.


거기에 딱, 최소한의 가이드 라인인 동시에 숨길수 없는 의도를 살풋이 숨겨두는...

저는 그런 제목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추어 분들의 경우에는 위에서 든 무제사진도 문제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욕심이 지나칠 때입니다.


제목말고도 구구절절 사진 이렇게 찍었어요, 뭐찍은 거예요, 저때 사실 요래요래했어요,

내가 이거 찍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보시는 님들이 좀 알아주셔야 할거같아요, 

하고 설명을 지저분한 텍스트로 나열해야 한다는 강렬한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런 설명을 달아야만 비로서 이해받을 수 있는 사진이라면 그건 잘못찍은 사진이라고 질타받아 마땅한 사진이 됩니다.

이미지 단 한장으로 전달하는 것이 사진의 본질인데

구질구질하리만치 추가로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절대로 촬영자에게 보탬이 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관람자의 상상조차 원초적으로 차단해버리는 위험한 안전장치, 없느니만도 못한 사족에 불과해요.


누군가 질문해서 답하는거랑, 처음부터 구구절절 달아두는거랑은 전혀 다른겁니다.

 


위대한 선배분들중에는 제목을 정해두고 찍으시는 분들조차 계십니다.

찍고 나서 제목을 붙이시는 분들도 계시죠. 이중 어느게 옳고 그르다 하는 차이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걸로는 좀 다투지좀 마시고.....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연습의 하나로서 제목을 정하고 사진을 찍는 것도 경험해보시라는 겁니다.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피사체를 고르고 세팅해서 촬영하는것보다도 더 어려운게

처음에 제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요. 이거에 비하면 조리개 셔속 감도따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찍고 나서 제목붙이는건 많이들 해보셨을겁니다. 근데 그거랑 이거랑은 근본적으로 달라요.

이걸 경험해보고 나면 찍은 후에 제목붙일때 자세가 달라집니다. 제가 장담해요.


최소한 무제 따위의 제목을 붙이는 일은 사라질겁니다.

 

사진과 제목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포스팅을 하려고 마음먹었었는데

이제사 하게 되네요......ㅎㅎ

 

ps) 단, 이것은 [예술적 목적을 지니고 사진을 촬영해 타인에게 보여주는]분들께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가족사진, 아이사진, 생활사진 찍는 분들은 제목이고 나발이고 신경쓰지 마시고

그냥 맘편히 여태까지처럼 사진생활 하시면 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