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MERA

애니메이션에서 배우는 사진 이야기.

by 선배/마루토스 2013. 3. 12.
728x90

 

 

 

개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아주 좋아합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그냥 좋아하는 정도를 약간 넘어서서 좋아합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에도 여러가지가 있는 법이고 여기는 사진을 주제로 하는 블로그다보니...사진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조금 풀어나가보도록 하죠.

 

애니메이션, 개중에서도 일본애니메이션은 만화와 실사의 중간에 적당히 걸쳐져있는...세계에서도 일본만이 가지는 특색이 여실히 보이는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퀄리티높은 소위 OVA나 극장판 애니메이션쯤 되면

스쳐지나가는 장면 하나 하나에 엄청나게 많은 배울점들이 숨어있어요.

단순히 구도..연출....이런걸 넘어서서 말입니다.

 

이 포스팅을 보시는 분들을 일단 사진 찍는 분들이라 가정하고,

여러분들도 최소한 일본 애니메이션 몇편정도는 보셨을겁니다.

 

그런 여러분께 제가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혹시 여러분들께서는 애니메이션의 장면 하나 하나를 보면서 "적정 노출"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 뭐 간단해요. 거창하지도 않습니다.

위에도 말했듯 일본애니메이션은 디즈니 애니메이션같은것과는 달리 실사와 만화 중간에 걸쳐있기때문에

애니메이션을 실사의 측면에서 바라보아도 전혀 이상하거나 어색한 것이 없어요.

왜? 왜 그럴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애니메이션의 감독정도 되면 어중간한 사진사보다 오히려 더 뛰어난 사진에 대한 조예를 기본적으로 지니기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진을 찍을때 연연해하는 제 1 과제인 적정노출만 해도 그래요.

만약 우리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실사로 옮겨 촬영해본다는 상상을 해보고 실행해본다고 쳤을 때

애니메이션처럼 나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실사와 그림의 차이가 아니라 바로 적정노출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가장 예시로 들기 좋은 작품이 얼마전에 개봉했던 늑대아이:아메와 유키...그리고 초속5cm같은 작품이 될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을 한번 볼까요?

실제로 이런 장면을 촬영하라고 한다면....우리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인물에 노출을 맞추고 찍게 되겠죠.

그리고 이를 위해 조리개는 개방하고 감도는 살짝 높이고....뭐 대충 그림 그려지실겁니다.

이제 위의 이미지를 보죠. 뒤쪽 배경의 어두운 정도....조리개를 열었을때 보이는 착란원...아웃포커싱....그리고 밤을 상징하는 약간의 언더노출...

 

사진의 기본에 그야말로 충실한 한장의 그림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노출, 색, 아웃포커싱, 빛망울.....사진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한장이예요.

사진을 아는 사람이 보면서 오호 하고 박수치고 감탄할 그런 한장이요, 오히려 장면에 어울리는 적정노출등을 보고 한수 배워야 하는 그림입니다.

 

 

이번엔 적정노출 말고 다른걸 배워보죠.

사진은 덜어냄의 미학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딱 필요한 것들은 담아낼 줄 알아야 비로서 덜어냄의 미학도 빛나죠.

애니메이션에서야 5초만에 후다닥 하고 지나가는 이 한장의 그림입니다만 한번 지긋하게 관찰해보세요.

뒤쪽에 눈은 아직 녹지 않았지만 인물들의 옷차림으로 보건데 눈이 녹을락 말락한 이른 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녹슬고 더러운 버스정류장 표시판과 아무것도 없이 벤치 하나만 덜렁 있는 것을 보며 여기가 상당한 촌구석이라는 사실또한 알 수 있고요...

아이의 차림새로 보건데 큰 여자아이가 학교 내지는 유치원에 가고 있다는 사실, 둘째아이는 가방도 교복도 없다는 점에서 아직 갈 나이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

버스가 꽤 오랫동안 오지 않았고 여자아이는 들뜬 상태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자세와 표정으로 알 수 있습니다.

 

단 5초동안 보일까 말까 한 단편적인 이미지속에 감독은 이토록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어요.

그것도 덜어낼 것들은 덜어내면서 구도와 적정노출까지 갖추고서요.

사진을 이렇게 찍으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 쉽지 않을테지만 만약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그 사진은 성공한 한장의 사진이 될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역시 유명한 초속5cm의 한장면입니다.

내리쬐는 햇살, 그리고 그림자 부분의 강한 컨트라스트는 이 날의 햇살이 쨍쨍하고 강한 빛이라는걸 우리에게 알려주며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의 밸런스가 잘 잡힌 적정노출을 생각해 어느쪽도 완전히 날라가지 않도록 그려내고 있죠.

예전에 다른 포스팅을 통해 빛을 알려면 그림자를 보시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 감독 역시 당연하다는 듯 그림자를 통해 빛을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2012/11/16 - [CAMERA] - 사진, 빛을 알고싶다면 그림자먼저 봐라.

 

 

 

우리가 카메라의 자동 노출 시스템에만 맡겨놓고 사진을 찍는다면 이런 사진은 나오지 않습니다.

어두운 날, 빛이 없는 곳에서 자전거에 실린 짐을 찍는다면...카메라는 빛을 더 받아내서라도 적정노출을 유지하려 들것이며

결과적으로 사진의 전체 밝기가 밝아지면서 이 장면이 쓰인 곳에 필요했던 외로움, 서러움의 정서를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없었을거예요.

적정노출....애니메이션에서 스쳐지나가는 한장면조차도 뛰어난 감독은 필요한 노출을 만들어서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어요.

명감독, 혹은 천재 감독 소리를 듣는 뛰어난 감독들의 애니메이션 작품은 이처럼 장면 하나 그림 하나도 철저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애니메이션을 봅니다. 그리고 그냥 웃고 떠들고 하는게 아니라 장면 하나 하나에 감춰진 감독의 의도,

이를 위해 감독이 구사한 빛과 색과 그림자와 화이트밸런스와 심도표현등을 연구하고 분석합니다.

왜? 이 감독들은 실사에 대한 충분한 분석을 통해 이미지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예요.

그렇기에 실사를 분석하여 만들어진 이미지를 다시 분석하여 보다 완성도 있는 실사를 만들 실마리를 붙잡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더 나아가면 책꽃이에 꽃힌 책 하나하나, 탁자에 놓인 소품 하나하나를 보며 감탄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늑대아이의 경우 아이들이 자람에 따라 책꽃이에 있는 책들이 계속 변해나갑니다. 유아서적에서 아동서적..학습서적으로..무서울정도예요.)

사진을 찍으면서도 소품에 저정도로 신경써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그 마인드를 배우게 됩니다.

 

결코 오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고자 발버둥치는 사진사로서의 입장에서..

저는 여러분들께 수준높은 애니메이션 몇편 느긋하게 감상해보시라는 말을 해보고 싶어요.

 

여태까지 보던 식으로 내용만, 줄거리만 즐기는게 아니라 한장면 한장면 사진사의 입장에서 이모저모 뜯어 분석해보면서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드디어 자기복제식 연출에서 벗어나 새로운 날개를 편듯한 작품이었습니다.

하나의 마스터피스...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멋진 작품이었어요, 늑대아이는...

 

이렇게 멋진 애니메이션. 이토록 가슴벅찬 카타르시스는 월E이래 오래간만이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미래의 한 축은 틀림없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어깨위에 있음을 확신케 한 작품이었어요.

사다모토의 그림또한 에반게리온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에 접어들고 있음을 확신했고요.....

 

꼭 보세요. 두번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