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MERA

저도 사진을 찍지만 사진보다 더 중요한건..

by 선배/마루토스 2011. 4. 21.
728x90



재작년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왔을 무렵의 일입니다.

제가 분당에 사는데 아시다시피 분당엔 탄천이라는 좀 큰 물줄기가 흐르고

그 지류로 저희 집앞을 지나는 여수천이 있습니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산책하기 좋은 길이죠.


날이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점차 잦아지던 어느 겨울날 아침에

출근을 하기위해 여수천길을 걸어 지하철로 가던 제 눈앞에 펼치진 광경은 그야말로 절경이었습니다.


살짝 내려 쌓인 눈에 아주 잘 얼어 미끈한 광택을 뽐내는 여수천의 풍경..

좌우를 둘러보며 각도를 잡아보다..


"아 이각도에서 서쪽을 향해 이따 해가 질무렵에 사진을 찍으면 저녁노을과 얼음의 반영이 기막힌 사진이 나오겠구나"하는 포인트를 찾은후

들뜬 마음으로 출근해 퇴근을 기다렸습니다.

어서 빨리 퇴근해 아까 그 포인트에서 삼각대 놓고 멋진 한장을 찍어야지~ 하는 그 기대감은

아마 사진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공감들 많이 되실겁니다.


그러나 마침내 퇴근시간이 되어 지하철타고 내려 여수천길로 내려온 제 눈앞에 펼쳐진 그 광경이란!!


얼음이 언게 신기하고 재미났던 꼬마들이

돌과 신발, 나무등으로 신나게 얼음을 깨며 놀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아침에 출근하며 보았던 그 멋진 광경은 다 어디로 가고..지저분하게 부셔진 얼음의 잔해들과 조각들만 남아

머리속에 제가 그려두었던 그 멋진 한장은 찍을 길이 없어졌던거죠.


순간 솔직히 좀 울컥 했습니다. 아니 왜 하고많은곳 다 놔두고 하필 여기서 얼음깨고 놀고있는건가!! -_-;;


그리곤 한숨쉬며 발걸음을 돌려 집에가서 애나 봐야지..하는 때 머리속을 스쳐지나가는 어떤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니 잠깐. 생각을 해보자.

내가 그 멋진 광경을 찍어본들 결국 그건 나의 자기만족아닌가?

그보다는 비록 내가 그 사진 좀 못찍게 되었을지언정 저 아이들이 얼음깨고 신나게 놀아 즐겁고 재미있었다면

그 아이들의 재미의 가치가 내 사진의 가치보다 수백수천배 더 큰것아닌가?"


다시 고개를 돌려 아직도 신나게 얼음깨며 놀고있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내년, 내후년즈음엔 내 아들도 저러고 놀고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아까 그생각은 확신으로 굳어졌습니다.


"맞아. 그깟 사진 몇장 못찍으면 어때. 내가 그 사진 찍겠다고 애들 여기서 못놀게 하면 세상에 그런 행패가 어디있고

그사진 못찍게 되었다고 저 애들을 원망하면 세상에 그런 억지가 어디있나!"


아까의 한숨은 어디로 가고 없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마저 가벼워집니다.



이후로는 그 어떤 멋진 포인트에서 그 어떤 멋진 셔터찬스가 왔을때

누군가가 프레임안에 들어오거나 구도를 망쳐놓거나 하더라도 그냥 기다리거나, 아예 사진찍기를 포기합니다.


그분들의 즐거움은 제 사진보다 우선시한다. 이원칙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요.







네 그렇습니다.

자기가 어떤 사진 몇장 찍어보겠다고..관광지건 산책로건 어떤 포인트건 먼저 선점좀 했다 해서

그날 그곳을 찾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켜라 마라, 거기서 놀지마라 딴데가라..이러는거 정말 아니라는거죠.




그분들이 그곳을 거닐며 느끼는 풍취와 느낌, 모처럼 나들이 나와 느끼는 여유와 행복의 가치는

취미사진찍으며 작가인양 거들먹거리는 사진사나부랭이들의 같잖은 사진 몇장따위보다 훨씬 더 큰것입니다.


장비 좀 좋은거 쓴다고...어디 사이트에서 일면 몇번 갔다고...같잖은 작가증 가지고 있다해서

그분들의 즐거움을 방해해도 된다는 권리 따위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런쪽으론 사실 더 포스팅 할 생각이 없었지만

리우군님의 독설포스팅을 보다보니 느껴지는 바가 있어..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적어봅니다.



사진찍는답시고 벼슬하는거 아닙니다 정말.

그깟 사진몇장 찍는것보다 더 중요한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라는거...그거 하나 잊지 말고 사진생활 하십시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