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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COMIC

전국무쌍 무장 간략 소개

by 선배/마루토스 2007.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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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무쌍류의 게임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전국무쌍 2.

그러나 삼국지와는 달리 무장들의 배경스토리와 인물상, 그리고 실제 역사와의 차이점을
한국 유저들이 매우 알기 힘들다.

게다가 최근의 한국 유저들은 그런부분을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도 대단히 약하다.
한글화 운운 하고 떠들다 복제로 즐기는 몰상식함이 돋보인다. (........)

어쨌거나, 그런대로 일본역사와 전국시대 인물에 대한 심득이 있어서
잘 모르는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자 이 글을 남긴다.


1. 사나다 유키무라
타케다 가문의 가신으로 사나다 마사유키의 차남.
나가시노 전투에서 타케다 가문 패퇴후, 끝까지 가쓰요리를 보좌하려 하였으나
최후의 최후에 가쓰요리는 사나다에 의지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죽었다.
사나다 가문은 이후 이에야스와 줄다리기 하다가 히데요시에게 갈아탔고
이에야스와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이가 좋지 않았었다.
혼다 타다카츠의 딸 이나히메는 유키무라의 형 노부유키의 부인.
후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마사유키와 유키무라는 이시나리측에, 장남 노부유키는 이에야스의 편을 들었다.
전국시대 최후의 전투라 할수있는 오사카의 진에서,
이에야스의 허를 찌르기를 수차례.이에야스로부터 "전국 제일의 무장"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그 초인적인 군략과 무용은 사나다 십용사등 많은 창작물을 낳았으며
 전국시대 인기투표에선 항상 다테 마사무네와 1,2위를 다툰다.
유키무라가 오사카측에 참전하는것을 두려워한 이에야스가 그의 영지를 자신의 가신으로 포위했었으나
아들과 함께 이들의 허를 찌르고 유유히 오사카로 향해 합류한 일은 특히 유명하다.
요도기미의 정부 오노 하루나가와 멍청한 히데요리, 생각없는 요도기미에 실망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결심을 실천해나간 마지막 사무라이.

2. 마에다 케이지
역사적으로 볼땐 뭐 그다지 한것도 이룬것도 없는 인물.
다만 일본 코믹스 "꽃의 케이지"를 통해 절대적인 인기를 획득.
노부나가의 가신 마에다 도시이에의 (형의?)양자.
눈에 띄기를 즐겨했으며 개인의 무용은 용사들이 즐비한 노부나가진영에서도 최고였다고 칭해진다.
후에 우에스기 신겐의 인품과 나오에 카네쓰구와의 우정으로 우에스기 진영에 투신.
풍류인으로서 남긴 책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는데, 문인으로서도 높은 교양을 쌓았다는 것이 엿보인다.

3. 오다 노부나가
스스로를 제6천마왕이라고 까지 부른 일세의 영웅
전국시대 통일의 기반을 닦은 남자.
오와리의 멍청이란 별명으로까지 불렸던 망나니.
실은 망나니짓도 후계자다툼에서 몸을 보존하기 위해 꾸몄던 행동이라고는 하지만
본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파격과 혁신을 어려서부터 실천했기에
다른이들에게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젊은이로 보였을 것이다.
개개인의 무용을 중시하던 당시의 전쟁양식을 집단전으로 몰고 간 혁신가.
농민들을 징발하여 싸우기에 농번기에 전쟁하지 못하던 타 다이묘들을 비웃으며
직업군인을 양성했던 군략의 천재.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무찌른 후,
제 1공훈자는 이마가와의 목을 벤 자가 아니라 이마가와 본대의 위치를 알린 자다,
라고 할정도로 전장에 있어 정보를 중요시 했던 파격의 인물.
아사쿠라-아사이 배반, 혼간지의 란, 잇코반란, 다케다 상락등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일본 최대의 강자로 떠오르지만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란으로 인해 사망.
혼노지의 변 당시 후계자로 내정되었던 오다 노부타다도 사망.
히데요시는 노부타다의 아들 미츠보시를 임시로 섬기며 실권을 장악했다.

4. 아케치 미쓰히데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반역자.
전국통일을 눈앞에 둔 노부나가를 혼노지에서 잡고, 비록 열흘동안이나마 천하인이 된 남자.
자신의 웅지와 능력을 사줄 주인을 찾아 전국을 방랑했던 시기도 있다고 한다.
노히메의 친족이라고도 하며, 사이토 도산을 섬기다 노부나가와 만나 오다가에 투신.
이후 시바다 카츠이에, 니와 나가히데, 하시바 히데요시와 함께 오와리의 사천왕으로 불린다.
그의 반란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평상시 노부나가에 쌓인 스트레스와 더불어
이에야스 접대역에서 교체, 무엇보다 노부나가가 그의 영지를 빼앗으려 한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대체로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히데요시에게 뭐 하나 꿀릴게 없는 능력의 소유자 였다고 하며,
군략, 정략, 축성, 외교 모든면에서 뛰어났다고 한다. 유명한 아츠치성도 그의 작품.
반란후 일족이 거의 잡혀 죽었으나, 그의 딸중 호소카와 타타오키에게 시집간 딸만이
히데요시를 거쳐 이에야스의 천하가 될때까지 살아남았었다.
바로 키쿄부인, 가라샤부인으로 불리며 유명한 크리스트 교도.
여담이지만, 대머리로 유명하다. 노부나가가 그를 부를땐 "대머리!"라 부르며 즐거워했다 한다.
야마자키전투에서 히데요시에게 패배, 후퇴도중 도적무리에게 습격당해 죽었다.
귀무자의 주인공 아케치 사마노스케 히데미츠는 그의 조카.


5. 우에스기 겐신
지는 싸움도 이기게 한다는 신의 군략을 지닌 남자.
싸운다는 행위 그 자체를 즐겼으며, 스스로를 비사문천의 현신이라 믿었다.
불심도 두터웠고, 영민들로부터 지지도 높았으며, 자비심도 많았던 남자.
일생의 호적수 타케다 신겐과 5번 싸워 승패를 결하지 못했다.
신겐이 죽은후에는 라이벌에 대한 우정으로 다케다 가쓰요리를 도왔다.
술을 좋아해 출전전야 술을 마시다 사망.
본명 나가오 카케도라. 겐신은 출가명.
여담으로 하도 부처님을 좋아한 나머지 가신들 몰래 가출해서 출가하려 하다 잡혀도 되돌아온적도 있다.
(실은 분열된 가신들을 통합하기 위한 술책이었다고도 한다.)
카와나카지마 결전에서 타케다 신겐의 책략에 휘말려 열세에 몰린 상황에서
스스로 기마대를 이끌고 다케다 본진을 기습, 신겐에게 상처를 입히며 전세를 뒤집은 일은 유명하다.
이로 인해 지는 싸움도 이기게 한다는 별칭이 붙었다.



6. 오이치
미남미녀가 많기로 유명했던 오다가에서도 그 미모로 유명했던 공주.
히데요시가 일생동안 사모했던 여자이기도 하다.
아사이 나가마사에게 시집가 세 딸을 낳았으나, 오빠인 노부나가에게 나가마사가 죽고
후에 노부나가가 죽은후 노부나가의 아들중 노부까츠가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시바다 카츠이에에게 누이를 시집보낸다.
시바다 카츠이에는 노부나가의 중신중 필두로서 실세였기 때문.
카츠이에와의 사이에선 자식은 없었다.
히데요시에게 카츠이에가 죽게 될때, 세 딸과 함께 탈출하지 않고
자신만은 남아서 카츠이에와 운명을 같이 했다.
히데요시는 그래도 오이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후에 세 딸중 장녀인 차차를 자신의 첩으로 삼는다.
후에 차차는 히데요시의 유일한 후계자 히데요리를 낳고 요도기미라는 존칭으로 불리우며,
토요토미가문 멸망의 길을 걷게 한다.


7. 오쿠니
카부키의 창시자라는 이즈모노 오쿠니.
참고로 그녀의 남편은 란마루와 쌍벽을 이루는 미소년이라 전해진다.
본래는 전국시대 말기의 인물.



8. 사이카 마고이치
용병집단 사이카슈의 리더.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는 이견이 분분하다.
당시에 드물었던 총포의 달인으로 전해진다.
히데요시와의 우정같은건 순 거짓말.
다만 사이카슈 자체는 실존집단이며, 혼간지의 난때 노부나가와 적대했기 때문에
노부나가에 의해 마을채로 멸망당했다.
참고로 수라의 각중에는 바로 이 사이카 마고이치를 테마로 한 에피소드도 존재한다.


9. 다케다 신겐
가히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이라 일컬어지던 양웅중 한명.
다케다 기마군단으로 이름높지만, 전체적 군의 구성비율로 보면
되려 기마대의 비율은 우에스기쪽이 높았다고 한다.
군략, 정략의 달인. 그 자신 아버지를 쫓아내고 정권을 장악한 야심가.
쿄토 상락중 대들던 이에야스를 아주 묵사발을 냈으나 이후 상락중 사망.
사망원인은 총에 의한 암살이라는둥, 독살이라는둥, 병사라는둥 말이 많다.
손자병법중 풍림화산의 구절을 특히 좋아하여 깃발로 삼았다.
풍림화산의 의미는 "공격은 바람과 같이,조용하기를 숲과 같이,
격렬하기를 불과 같이, 움직이지 않기를 산과 같이"이다.
풍림화산의 병법의 진수는 사나다와 시마사콘에게 이어졌다고 한다.
여담으로 시라기 가히 겐지이래의 명문가라고 하는데, 이 시라기를 한자로는 신라 라고 쓴다.
신라왕족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믿지 않는것이 좋다.
평생 지는 싸움은 한적이 없는 신중함을 지녔다.
신겐을 두려워한 나머지 노부나가는 신겐 생존중엔 갖은 책략으로 결전을 회피했었다가, 신겐 사후 가츠요리를 나가시노에서 이에야스와 합동작전으로 짓이긴 종달새처럼 밟아버렸다.
이때 사용한 책략이 3천정의 철포의 연쇄사격.



10. 다테 마사무네
오슈의 독안룡. 전국무장 인기 1,2위를 다툰다.
능력은 있었으나 너무 늦게 태어났기에 그가 철이 들었을때는 이미 히데요시 천하.
이후 이에야스에게 협조하며 일본의 동쪽을 지배한다.
오슈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혈육들과 첨예하게 대립하다, 친어머니가 그에게 독을 먹인 적까지도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한쪽눈을 잃고, 독안룡의 칭호를 얻게 된다.
히데요시에게 마지막까지 굴종의 의사를 밝히지 않다가,
히데요시의 호조 정벌 직전 스스로 말을 달려 그 앞으로 달려가 무릅을 꿇었다.
이때 히데요시는 "조금만 늦었더라도 그 목이 자리에 없었을것"이라 했다 한다.
세키가하라 전투당시에는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에서 우에스기를 막아냈다.
이에야스의 아들중 한명을 꼬셔 독자적인 외국무역 및 수교를 꿈꾸지만
이에야스는 자신의 아들을 직접 처단, 이후 마사무네도 그 꿈을 접는다.
유난히도 서양의 신문물을 좋아했었다 하는데, 실제로 좋아했다기 보다는 외국과의 독자무역을 위한
포석으로서 좋아하는 척 했다고도 한다.
선교사들을 우대해서 일본 최초의 병원을 짓게 하기도 했다.



11. 노히메
사이토 도산의 딸로 노부나가의 부인.
정사에서는 노부나가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도 하고
실제로는 노히메가 두사람(처와 첩)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진실은 모른다.
다만 소설 대망에서는 노부나가를 이해하는 단 한사람의 여인으로 나온다.
이후 소설의 노히메는 절대의 지지를 얻으며 일본인 마음속에 자리잡는다.
노부나가의 아들을 낳은 적은 없으며, 노부타다, 노부카츠등은 모두 측실소생.
사이토 도산이 그녀를 시집보내며 사위의 목을 따오라 했다는둥,
노부나가가 그녀를 속여 사이토 도산의 중신을 모함,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둥 다양한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여담으로 소설 대망에선 혼노지에서 노부나가와 함께 죽는다.



12. 핫도리 한조
본래 핫도리 한조는 이에야스를 섬기는 이가 닌자 집단의 두목에게 대대로 붙는 이름이다.
특이하게도 한조는 닌자로서의 활약보다, 무장으로서의 활약이 눈에 띈다.
특기할만한 공적으로는 노부나가 사망후,
단 수십명의 수행원뿐이던 이에야스를 무사히 순뿌로 돌아오게 한 공훈등이 있다.
이에야스는 그를 특별히 신임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아들을 노부나가가 자결시키라고 명령했을때,
그 시행을 맡기기도 했다. 도쿠가와 막부 공의 은밀의 시초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유명한 만화 "이가의 카게마루"에서
항상 카게마루의 무능한 두목(....)으로 나왔었다.



13. 모리 란마루
모리 나가요시, 모리 보마루의 형제.
전국제일의 미소년. 노부나가의 동성애 상대라는둥 말이 많다.
노부나가가 가장 총애한 시동이며, 한자루 대도를 귀신처럼 썼다 한다.
혼노지에서 노부나가를 지키다 사망.



14. 토요토미 히데요시
말 안해도 아는 전국시대 최대의 풍운아.
졸개무장의 아들로 태어나 바늘장사까지 해본 최하류 인생 출신.
노부나가의 눈에 들어 졸개 노릇을 하다 점차 출세, 노부나가 사후 천하를 잡는다.
다만 그의 두뇌는 군략에는 향해있었지만 정치에는 약했고,
그가 사망 하자마자 토요토미 천하는 무너진다. 유난히 혈육에 집착했던 남자.
본래 이름은 키노시타 도키치로. 이후 약간 출세하자,
기존 중신들의 곱지 않는 눈길(특히 시바다 카츠이에)을 의식,
시바다 카츠이에와 니와 나가히데의 성중 각 한글자씩 따서 하시바 히데요시라 개명.
토요토미의 성은 전국통일후 천황으로부터 받은 성.
여자를 좋아했으나 네네와는 끝까지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네네와는 졸개시절 고생을 함께 할때 결혼한 사이.
네네도 히데요시가 여자를 밝히는건 어쩔수 없었다고 포기했다 전해지며,
다만 시즈가타케의 철본창을 비롯한 토요토미 막하의 무장들은 그녀를 어머니 모시듯 모셨다고 전해진다.
노부나가 사망 당히 쥬코쿠에서 모리와 대진중이었으나,
일생일대의 재빠른 판단으로 즉시 화해를 맺고 회군,
한발 늦었던 시바다 카츠이에와 돌아올 형편이 안되던 타키가와 가즈마스를 제끼고
니와 나가히데와 연합, 야마자키 전투에서 아케치 미쓰히데를 무찌르고
단숨에 천하인으로 부상한 절세의 행운아.
이후 타키기와 가즈마스를 중신의 명단에서 제거, 시바다 카츠이에는 전투에 승리,
협조적이던 니와 나가히데도 자결로 몰아넣은후 명실공히 천하를 잡는다.
야마자키 전투 당시 아케치가 히데요시에게 전력을 다 할수 없었던 이유는 
반대편에서 압력을 가해오던 이에야스의 덕분이기도 했지만, 이에야스에게
특별한 감사의 표시는 없었으며, 이에야스도 이를 티낸적은 없었다.
이에야스는 도리어 주인없는 땅이 된 구 다케다의 영토를 그틈에 낼름 집어먹었다.
항시 천하를 놀라게 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 였으며
아즈치 성을 능가하는 오사카 성을 쌓은 이유도 자신의 권위를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오사카성은 2차 세계대전시 폭격에 의해 불타버렸고, 지금 남아있는 오사카 성은 전후에 새로 지은것으로
본래 크기의 1/5에도 못미친다고 한다.
일생일대의 대 구상 명나라 정복이라는 미친짓을 착착 실행에 옮겨가며 조선과 전쟁,
그러나 전황은 점차 진흙탕처럼 그를 옭아매기 시작했으며 마침내는 그의 사망과 함께 전면철수한다.
임진왜란도 천하를 놀래키기 위한 그만의 퍼포먼스중 하나였을것이다.
그러나 이 왜란을 둘러싸고 무신파와 문신파가 극렬하게 대립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다.


15. 혼다 타다카츠
도쿠가와에게는 넘치는 무장이란 소리를 들은 천하무쌍의 무장.
커다란 사슴뿔 투구와 잠자리도 베는 창으로 유명하다.
풀네임은 혼다 헤이하치로 타다카츠. 이이 나오마사,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고헤이타,
사카이 타다쓰구와 더불어 도쿠가와 4천왕의 한명.
어려서부터 전장에 섰으면서도 평생 상처하나 입은적이 없다 한다.
고마키 나가히사테 전투에서는 수십기로 히데요시 수만군의 진로를 방해,
이에야스의 승리에 결정적 공헌을 한다.
문무중 극단적으로 무에 치우쳤던 대표적 무장.


16. 이나히메
혼다 타다카츠의 딸. 사나다 노부유키의 부인.
이에야스에게 반기를 들은 사나다 마사유키가 마지막으로 손자와 며느리를 보고자 우에다 성에 들렀을때,
스스로 갑옷을 입고 대도를 들고 나가
"설사 시아버지라 해도 이제는 적이므로 들여보낼수 없다"고 한 일은 유명하다.
마사유키는 며느리를 들임으로서 아들을 도쿠가와에 빼앗겼다고 한탄했다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가문을 둘로 나눠 이에야스와 미츠나리 어느쪽이 이겨도 가문이 보존되도록 하는
고도의 정치술수였다고도 한다.
심정적으로는 사나다 가문은 이에야스의 적이 되기를 택할수밖에 없었다 생각한다.
본래 사나다 노부유키와 혼담 당시에는 시아버지 되는 마사유키가
"이에야스의 딸이면 모를까 가신의 딸로는...."하며 난색을 표하자
이에야스가 "혼다의 딸이지만 내 양녀의 자격으로"하며 우격다짐으로 시집보냈다.
여담으로 이 수법은 이에야스의 전매특허로, 가신들의 딸을 마구 양녀삼아 정략결혼의 도구로 사용했었다.
노부유키와의 결혼생활이 불행했었다는 말은 전해지지 않는다.
도리어 그 반대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17. 도쿠가와 이에야스
"노부나가가 반죽하고 히데요시가 구운 천하라는 떡, 힘안들이고 먹은것은 도쿠가와"
이 한마디가 모든것을 대변하는 인내의 남자.
이마가와가문에 종속된 마츠다이라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나,이마가와 사후 노부나가와 동맹,
노부나가 사후 히데요시와 동맹, 히데요시 사후 비로서 천하를 지배한 효웅.
이마가와 가문 멸망후 스스로 마츠다이라의 성을 버리고 도쿠가와의 성을 붙였다.
군략과 정략에 모두 뛰어났으며, 물량으로 항상 상대를 압도했던 히데요시가 단 한번 패한 유일한 전투,
고마키 나가히사테 전투를 지휘한 남자.
"내 군략의 스승은 다케다 신겐 공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실패로부터 배운 남자.
히데요시와 가장 큰 차이점은, 히데요시천하는 히데요시가 죽자 끝났지만,
도쿠가와의 천하는 이에야스가 죽은후 더욱 반석에 섰다는 점일것이다.
그만큼 뛰어난 정략의 소유자.
별칭 순뿌의 너구리.
그의 휘하 무장들은 이상하리만치 그에게 충성을 다했지만, 돌아온 댓가는 적었다.
그로 인해 전국 통일후 순뿌시대 이래의 가신들은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검성 야규무네노리를 막부에 등용, 감사역으로 삼은것도 이에야스.
임진왜란 당시 끝까지 출병에 반대했었으며,
왜란 발발후에도 에도의 치안을 핑계로 단 한명의 병사도 조선땅에 보내지 않았었다.
후계자는 히데타다.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에게 히데타다의 딸을 시집보낸 비정한 할아버지.
오사카의 진 전투후 손녀딸은 무사 구출되었다.
이후 공식적으로는 장군의 지위를 아들 히데타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오고쇼"라는, 말하자면
명예회장같은 직위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실권을 휘두르며 정치에 참견했었지만
얌전한 히데타다는 그런 아버지에게 말없이 따랐다.
따르지 않은 아들들은 모두 숙청당했다. (........)
심복중의 심복이던 차야 시로지로의 아들들이 대접했던 농어튀김을 먹은후 탈이 나 급사.


18. 이시다 미츠나리
절에서 시동 노릇을 하다가 히데요시에게 발탁되어 시동이 된다.
얄미우리만치 눈치가 빨랐던 꼬마라고 한다.
히데요시에게 등용된후에는 마치 이에야스에게 있어서 혼다 마사노부와 같은 참모 및 보급역을 맡아 활약했다.
혼다 마사노부와 마찬가지로 무장파에게 경원시 당했으며,
히데요시 사후 가토 기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등은 미츠나리에 대한 혐오감으로
이에야스 휘하에 들어갔다는 말까지 나올정도로 미움받았다.
본인은 철저한 히데요시 빠돌이. 히데요시 사후 이에야스의 태두를 극도로 경계했다.
이에야스와 대결전을 앞두고, 자신에게 인덕이 없음을 알고 총대장으로 모리를 내세우지만,
고바야카와의 배반으로 덧없이 패배.
포로로 잡힌후 사형당했다. 포로로 잡힌 후의 몸가짐은 후세 대대로 회자될정도로 담대했다고 전해진다.



19. 아사이 나가마사
젊은 아사이가의 당주. 노부나가의 처남. 오이치의 남편
아사쿠라 요시카게 가문과 동맹관계에 있던 가문의 탓,
노부나가를 극도로 싫어했던 아버지의 탓으로 본인이 원하지 않았던 노부나가와의 전투를 하게 된다.
아사쿠라 가문 멸망후에도 고집을 피우던 아버지로 인해 멸문을 각오,
최후의 전투전에 오이치와 세 딸을 히데요시에게 보낸다.
이후 세번 돌격하여 용감하게 싸운후 전사. 말 그대로 義와 愛에 산 남자.
오이치와의 결혼생활은 매우 행복했었다 전해진다.



20. 시마 사콘
다케다 신겐 밑에서 군략을 배우고, 쓰쓰이 가문에 종사한다.
후에 미츠나리가 자신의 봉록의 절반을 주고 가신으로 삼은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세키가하라 전투 시작 직후,총격을 받고 부상하여 후방으로 후송,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있지 않다.
드높았던 이름에 비해 활약하지도 못하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가 부상하지 않았다면 세키가하라의 승패가 바뀌었을것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이미 그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1. 시마즈 요시히로
큐슈의 패자 시마즈 가문의 차남.
임진왜란때 활약으로 더욱 유명한 무장.
군략과 무용에서 모두 뛰어났으며
같은 큐슈에서 패권을 다투던 타치바나 가문을 멸망촌즉까지 밀어넣지만 히데요시에게 굴복.
세키가하라 전투에선 이시나리의 서군측에서 적군에게 기습공격을 종용했지만
이시다는 "의의 싸움에 기습은 무용"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
이후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웅크리고 있다가 승패가 결정나자
말그대로 전장을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며 전장을 탈출,
귀신 시마즈의 앞길을 가로막을수 있었던 무장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도 여담이지만, 일본에서는 시마즈가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을 죽인 장군"으로도 유명하다.
임진왜란 최후의 해전이던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에 맞서 싸우고 그를 전사시켰다.
이 부분은 한국에서는 거의 말해서는 안되는 금구인듯하다. -_-;;
개인의 군략과 무용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가히 당시 일본 최강에 놓을만했던 무장이다.


22. 나오에 카네츠구
"주군보다 더 큰그릇"이라고 이에야스가 평했던 우에스기 카게카츠를 섬기던 무장.
세키가하라 전투의 발단은 그가 이에야스에게 보냈던 무례한 서한으로 인한다.
당시 이시다 미츠나리가 거병하는 쪽이
단숨에 전투를 통해 천하를 잡기 편하다고 이에야스는 판단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제발 좀 거병해 주기를 바라는 판국이었다.
이를 꿰뚫어본 카네츠구는 이에야스의 서한에 무례한 답장을 보냈고,
이에야스는 불같이 노한척하며 우에스기 정벌에 나선다고 소문을 있는대로 내며 동쪽으로 출진.
이 틈을 타 미츠나리가 모리를 대장으로 내세워 거병하자
즉각 우에스기는 타테 마사무네에게 맡기고 회군하여 세키가하라전투에서 이를 무찔렀다.
실은, 이 서한 자체가 이에야스가 미쓰나리가 거병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그 구실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보냈다는 설이 유력한데,
이를 받아본 이에야스는 서한의 내용이 무례함에 화를 내지 않고,
도리어 카네츠구가 너무 그릇이 큰 나머지 주군의 가문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며 못마땅히 여겼다 한다.
다테 마사무네와 나름대로 전투는 치뤘어도
카네츠구의 의도가 이에야스를 도발하는데 있었다는 것은 거의 명백한 사실로 여겨지며,
실제로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우에스기가문이 이에야스가문에 굴종토록 한다.
작중 미츠나리, 사나다와의 우정은 공상의 산물.
우에스기 겐신 사후 우에스기 카게카츠를 보좌하여 겐신때보다 오히려 더 큰 세력으로 키운 장본인.
그러나 위에 적은 세키가하라전투 이후 대폭 영지는 대폭삭감되었다. 우에스기 가문은 존속되었지만.
그가 우에스기 가문에 대해 충신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판단하기 힘들다.


23. 네네
히데요시의 부인. 마에다 토시이에의 부인 오마츠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무장의 부인중 하나.
타고난 재기와 지혜가 뛰어나 히데요시의 심중을 항상 꿰뚫어보았다 한다.
히데요시가 졸개시절에 결혼, 그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쳤다.
여자를 밝히는 히데요시를 못마땅해 했지만, 아들을 낳지 못한것이 그 이유라 생각하며 질투를 자중,
히데요시는 이를 항시 고마워하면서도 무서워했다고 전해진다.
후에 키타노만도코로라는 어마어마한 호칭을 받는데,
히데요시의 아들을 낳은 요도기미(오이치의 딸)와 다투기 싫어 일부러 떨어져 나와 생활했다 한다.
히데요시 사후, 히데요시 천하가 무너질것을 가장 잘 예측한 사람.
히데요시는 바람을 피우면서도, 평생 이 마누라를 소중히 여겼으며,
출정할때마다 쉴새없이 연애편지를 보내어 그녀를 위로했었다 한다.



24. 후마고타로
전국시대 유명한 3대 닌자 집단중 하나인 후마 닌자의 수령에게 대대로 붙는 이름. 호죠 우지마사를 섬겼다 한다.
참고로 3대 닌자 집단은 후마, 이가, 코우가.
역사적으로 특별한 사항은 없으며, 호죠 멸망후 에도에서 도둑질을 하다 잡혀 죽었다.(..........)



25. 미야모토 무사시
일본최강의 병법자. 평생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고 하며 제자에는 이오리, 남긴 저술에는 오륜서가 있다.
장검과 단검을 같이 사용하는 이도류의 창시자.
그러나 이미 세상은 야규의 신카게류가 점하고 있었다.
사사키 고지로와의 대결은 너무나 유명.
이때 검이 아니라 배 젓는 노로 정수리를 "때려"죽였다는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6. 타치바나 킨치요
큐슈의 열강 타치바나가문의 여당주. 남자 후계자가 없어 거의 남자처럼 키워졌다.
후에 결혼하여 남편이 가문의 당주가 되지만 히데요시로 인해 헤어져 있게 되었다.



27. 기타.
시바다 카츠이에
노부나가 휘하 제일 무장. 마치 맷돼지와 같다는 평을 들었으리만치 저돌적인 오다가문 최고의 용장.
낡은 구식 무장이라 하시바 히데요시의 태두를 못마땅히 여겼고
노부나가 사후에는 히데요시와 대립, 무사의 고집을 관철시키며 전투의 패배후 할복.
오이치의 두번째 남편으로서 더 유명하다.

요도기미
오이치의 장녀. 아명은 차차히메. 오이치를 꼭 빼어닮은 미모의 소유자였다 한다.
평생 오이치를 사모했었던 히데요시가 자신의 첩으로 삼았으며,
네네, 쿄코쿠부인등 히데요시의 부인들 누구도 낳지 못했던 히데요리라는 후계자를 낳는다.
사실은 그 이전에도 한번 출산했으나 곧 죽었었다.
다른 부인 누구도 임신에 성공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다른 남자의 씨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돌았었으며,
실제로 히데요시 사후 오노 하루나가를 침실로 자주 불러들이곤 했었다.
본디 총명한 여인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명확한 판단력을 잃고
천하의 안주인 행세를 하며 토요토미 천하가 막을 내리게 하는데 일조해버렸다.
참고로 쿄코쿠 부인은 본래 아시아 가문의 주인에 해당하는 가문의 공주로
아사이 가문이 득세하며 본래 주인이던 쿄코쿠 가문을 몰아냈었는데,
히데요시가 아사이 나가마사를 죽이고 대신 영주가 되자
남동생의 출세를 조건으로 히데요시의 첩이 되었다.
히데요시의 측실중에서 가장 귀족적이며 아름다웠다 한다.


28. 이시카와 코자에몽
전국시대의 가장 유명한 대도.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에 침입하여 보물을 훔치려 하다 잡혀
기름에 튀겨 죽었다. (.......)


전국무쌍류의 게임을 플레이 하기전에 한번쯤 읽어들 보면 좋을듯........

써놓고 보니 참 길게도 썼다.

꽤 오래전 루리웹 전국무쌍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고쳐서 올림.